(한국교통안전공단 X 철도경제신문 기획) 철도사고 발생원인을 분석해보면,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를 끊임없이 떠올려, 종사자들 간 공유해야만 철도사고를 줄일 수 있다. <그때그사건>을 통해, 이달에 발생한 철도사건 중 재조명이 필요한 중대 철도사고나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건을 되짚어 본다. 이를 계기로 당시 사고의 개요와 원인, 사고 이후 시설ㆍ제도의 개선사항 및 시사점 등을 살펴본다.
2012년 11월 22일 오전 8시 30분경, 부산 3호선 배산역에서 물만골역으로 향하던 열차가 역과 역사이 터널 중간에서 고장이 나 멈춰섰다.
고장 열차(제3038호)가 다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뒤따라오던 열차(제3040호)가 구원열차로 지정됐다.
고장열차가 정상적으로 기동(起動)할 수 없을 때, 동력이 있는 다른 열차에 연결시켜 견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열차를 '구원열차'라 한다.
그런데 부산 3호선에서 구원열차가 고장열차에 과속으로 접근하다가 충돌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나버렸다.
구원열차의 기관사는 고장열차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다가 약 47m 앞에서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내리막 경사에 급구배가 있는 터널이었다. 구원열차의 당시 속도는 52km/h. 규정에 따르면 구원열차는 10km/h로 운전하다가 고장열차 10m 앞에 멈춰서야 한다.
구원열차 기관사는 뒤늦게 제동을 걸었지만, 이미 늦었고, 고장열차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고장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201명이 넘어져 부상을 당했고, 구원열차 2칸은 탈선했다. 당시 버스파업으로 평소보다 지하철을 탄 승객이 더 많았다고 한다.
자동운전에서 수동모드로 바꾸며 관제지시-매뉴얼 안지켜
대체 고장열차를 '구원'하러 온 열차는 왜 고장열차와 부딪혔을까?
부산 3호선은 평상시 자동운전(ATO, Automatic Train Control Mode)으로 운행한다. 앞에 열차가 있으면 자동으로 후속열차가 정지되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 당시 구원열차는 ATO모드로 운전하지 않았다. 고장열차를 구원하기 위해 수동모드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례상황인만큼 관제의 지시와 매뉴얼에 따라 운전을 해야 하는데 사고 조사결과 제대로 지켜진게 없었다.
고장열차는 최초 배산역을 출발해 물만골역으로 가던 중 자동운전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보조전원장치(SIV)에 고장표시등이 들어왔고, 비상제동장치가 작동됐다. 전동차는 기동상태로 물만골역 전방 120m에 멈췄다.
고장열차 기관사 A씨는 수동운전(MCS)ㆍ비상운전(FMC)으로 전환해 운전을 시도했지만, 이내 기동이 정지되고 객실등마저 꺼져버렸다.
기관사 A씨는 관제에 통보하고, 재기동을 시도했지만 운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휴대전화로 관제사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후 방호용 손전등을 켜고 객실로 이동하면서 승객들에게 육성으로 차량고장 상황을 안내하고 뒷쪽 운전실로 이동했다.
뒷쪽 운전실 배전반에선 화재가 나고 있었다. 배전반 터미널에서 접지 단락으로 축전지가 방전돼 저전압으로 SIV 작동이 정지됐고, 같은 부위에서 접촉불량으로 '아크'가 발생되면서 방전ㆍ발열이 나 화재로 이어졌다. 축전기 전원이 차단되면서 무전기 통화마저 불가능해졌다.
기관사 A씨는 운전실 내 소화기로 즉시 화재를 진압했지만, 승객이 타고 있던 고장열차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제 남은건 빠른 시간 내에 구원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이었다.
정확한 사고지점도 모른 채 뒤따르던 열차에 '구원운전' 지시만...
승객들은 이미 객실이 정전됐고, 타는 냄새가 난다고 신고를 하고 있었다. 일부 승객은 유독가스가 나니, 출입문을 개방해달라며 항의전화를 걸었다.
관제에서는 뒤따라오던 3040호 열차를 호출해 기관사 B씨에게 배산역에 정지하라고 했지만, 응답하지 않았가 배산역을 통과하고 나서야 뒤늦게 무전을 받았다.
이 열차는 관제에서 구원을 지시받고서야 배산역으로 거꾸로 돌아가 승객을 모두 하차시킨 후, 고장 열차로 향했다.
문제는 구원열차로 지정된 3040호 열차에게 구원열차 운전지시만 내려졌을 뿐, 관제에서 전령법(Messenger Method or Staff Dispatching Operation) 시행ㆍ고장열차 정차위치ㆍ구원열차 운전 주의사항 등을 지시한게 없었다는 점이다.
전령법은 열차 등이 있는 폐색구간에 다른 열차를 운전시킬 때 시행하는 폐색준용법이다.
구원열차로 지정된 열차에 역장 등 전령자가 따로 타지도 않은 상태에서, 관제에선 기관사 B씨에게 사고 위치조차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고장열차를 구원 연결하면 물만골역에 정차해, 승객을 하차시키라는 내용까지만 오갔다고 한다.
기관사 B씨는 경찰에 "사고 지점이 물만골역을 지난 지점인 줄 알았다"며 "구원작업을 서두르느라 40km/h로 달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역장은 이례상황 때 전령법을 시행하는 운전책임자다. 하지만 배산역장은 관제사에게 고장열차가 정지해있었고, 구원열차가 운전한다는 정보도 알지 못했다.
또 배산역장과 역무원들도 대용폐색식과 전령법 등을 시행할 때 사용하는 운전용품을 보관만 했을 뿐, 사용방법도 모르고 있었고 차량 구원에 대한 훈련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진술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구원열차는 사고를 빠르게 수습하고자 매뉴얼에 따라 작동시키는 하나의 수단인데, 이 사고의 경우 관제ㆍ기관사ㆍ역무 등에서 기본이 될 매뉴얼(운전취급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전형적인 인재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매뉴얼에 따라 '보고'와 '소통'만 정확하게 이뤄졌어도 추돌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며 "평상시에도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훈련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 보완해야할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